김현주이사님 발표자료입니다.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시 : 2015-09-26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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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용기(The Courage to be); 용기의 개념에 담긴 도덕적, 존재론적 의미를 하나로 묶                                    어줌

 

1.  존재와 용기

 

<용기>: 윤리적 실체이지만 인간 실존의 전 영역, 존재 그 자체의 구조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 용기를 이해하려면 윤리학적, 존재론적 고찰이 필요.

용기에 관한 가장 초창기의 논의--> 플라톤의 대화편, <라케스>에 명백히 명시됨. 유명한 장수인 니키아스가 내린 정의; ‘두려움의 대상, 대담한 것’,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려서, 이러한 의문에 대답하기위해서는 ‘모든 상황 아래서 모든 선한 것과 악한 것들에 관한 지식’을 소유하여야만 가능. 소크라테스 조차도 진정한 용기에 대한 개념 정의는 실패-> 용기는 덕성의 일부인데,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덕성은 곧 지식이었기 때문에 용기의 개념에 대한 무지는 용기의 진정한 본질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함.

* 용기에 대한 정의가 어려운 이유; 용기는 인간 실존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 따라서 용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과 세상, 그 세상의 구조와 가치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용기는 존재의 정체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고 존재는 용기의 정체를 보여 줄 수 있다.

 

*용기의 개념-> 플라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의 용기의 개념.

플라톤의 국가론(republic)->용기란 티모스(thymos; 기운차고 용기있는 요소)와 관련된 여혼의 요소와 관련. 이들은 필라케스(보위병)이라 부르는 사회계층과 관련, 티모스는 인간의 지적인 요소와 감각적인 요소사이에 있음 영혼의 구조 속에서 중심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으로 이성과 욕망의 가교 역할을 함.-> 플라톤의 사상과 플라톤 학파 전통의 경향은 이원론적인 것- 주로 이성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의 사이의 갈등을 강조 궂이 둘사이를 이어주는 가교가 필요없음.

* 데카르트, 칸트에 이르러 인간 존재의 중간지대가 제거되고(티모에이데스;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욕을 억압하는 어떤 기재) 도덕적이고 존재론적인 결과들이 생성->칸트의 도덕적 엄격함과 존재를 사고(thought)와 외연(extention)으로 나누는 데카르트의 구분이 그 원인.

* 용기의 귀족주의적 요소-> 아리스토텔레스가 제한, 보존; 그에 따르면 고통과 죽음에 용감하게 맞서기 위한 동기는 그렇게 함으로써 고귀하고,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비열하게 되는 무엇, 따라서 용기있는 사람은 고위한 것을 위하여 행동하여야 함-> 그것이 덕성의 목표.-> 용기란 칭찬받아 마땅한 행위; 칭찬받을 일을 행하며 멸시당할 일을 거부하는 것. 용기는 자신의 참된 본성, 내적인 목표 혹은 생명력을 긍정하는 것->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현실화하는 자리->용기는 귀함과 선한 아름다움. 이런 면에서 용기는 영웅적이고 귀족적인 무엇인 반면 소크라테스의 용기는 이성적이고 서민적인 어떤 것.

* 용기의 귀족족 전통-> 중세초기에 다시 살아남. 기사는 군인과 귀족을 대표하는 자->고상하고 고귀하며 용감한 정신의 ‘호헤무트(Hohe Mut)’ 라 불림. -> 독일어; 용기에 관련된 두 단어-> 타페르(tapfer); 무티히(mutig): 타페르-본래 봉건사회의 상위 계층에 속한 힘을 가르킴> 견고한 무게 있는, 중요한의 의미.  무티히- 영어의 Mood 에 해당, 영혼의 움직임을 뜻하는 ‘Mut'에서 파생, 따라서 무트는 개인의 중심인 ’마음‘의 문제-> 중세 초기의 영웅적 귀족족 윤리와 기독교 인본주의 전통의 유산으로 중세 말기에 강하게 나타난 이성적 서민적 윤리 사이의 긴장-> 토마스 아퀴나스의 고전에 잘 드러남.

 

* 토마스 아퀴나스의 용기; 용기는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을 위협하는 어떤 세력이던 정복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 지혜와 연합 ; 자기 자신과 관련하여 절제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정의를 포함. 토마스의 경우 존재의 본질 속에서 개인의 성품 속에서 지성과 의지중 지성이 앞선다고 봄으로써, 용기는 지혜에 종속된 어떤 것. 토마스에 따르면 완전한 용기는 성령(Divine Spirit)과 은사(gift)이다. 자연적인 마음은 능력은 성령을 통하여 초자연 완전함으로 올라간다. 이것은 용기가 기독교의 덕목들인 믿음, 소망, 사랑과 구체적으로 연합한다는 것을 뜻함.-> 따라서 영기의 존재론적인 면은 믿음으로, 용기의 도덕적인 면은 윤리학, 혹은 사랑으로 들어간다.

 

2.  용기와 지혜: 스토아 학파 : 신스토아 학파

 

도덕적, 존재론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용기의 넓은 개념은 고대와 현대초기  스토아 학파와 신스토아학파를 통해 현저히 나타남. 두 학파는 모두 철학적 학파라는 공통점.

 

* 스토아학파-> 스토아 철학의 용기; 스토아철학자들의 고안물이 아님. 그들은 용기라는 개념을 합리주의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고전적으로 표현, but, 그 뿌리는 신화적인 이야기들, 영웅적인 행위에 관한 전설들, 고대의 지혜, 시가와 비극, 스토아 철학 이전의 수세기전의 철학을 망라-특히 소트라테스의 죽음을 포함- 한 총체적인 요소들이 스토아 철학의 용기에 영속적 힘을 불어넣음. 운명과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한계상항을 보여줌. 죽음을 긍정할 수 있기에 생명도 긍정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줌.-> 이러한 사실은 용기의 전통적 개념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 과거의 영웅적인 용기가 소크라테스를 통하여 온당하고 보편적인 개념이 됨. 용기에 대한 대중적인 개념은 귀족적인 용기의 개념에 저항하여 생겨남. 군사적인 불굴의 정신에서 지혜의 용기가 우위를 차지하게 됨. 따라서 스토아적 용기는 존재론적 의미에서 그리고 도덕적인 의미에서 ‘존재의 용기’다. 존재의 용기는 우리 속에 있는 비본질적인 요소들을 거스르는 자신의 이성적인 본질을 긍정하는 용기인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용기 속에는 무신론이나 유신론이라는 개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세네카에 의하면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쾌락에 손상되지 않으려면 죽음이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는 인간으로서 고통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이성적 존재의 중심을 정복하도록 두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는 고통을 초월하여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왜냐면 고통은 본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시 속에서 우연히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지혜와 체념의 용기는 구원의 믿음으로 대치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신 신에 대한 믿음이지만, 스토아 철학 자체는 그 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함-> "어떻게 지혜의 용기가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서 스토아철학은 한계에 봉착. 스토아 철학자들은 모든 인간이 보편적인 로고스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평등을 강조하나 그들  또한 지혜가 지극히 한정된 소수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을 인정-> 대부분의 사람들을 ‘욕망과 두려움의 속박에 갇혀있는 어리석은 자들’로 여긴다. 결국 사람들은 근본적인 혹은이성적인 본질과 더불어 신적 로고스에 참여하면서도 자신의 합리성과 실제적인 갈등의 상태에 빠져 있어 자신의 본질적 존재를 용감하게 긍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3. 용기와 자기긍정; 스피노자(Spinoza)

보편적인 구원에 대한 신앙이 보편적인 체념의 용기를 대치하자 스토아 철학은 무대 뒤로 사라짐.

스피노자와 그의 윤리학; 자기 긍정의 학설-. 스피노자 사상의 중심요소.

용기와 자기긍정의 관계-> 포르티투도(fortituo)와 아니모시타스(animositas)

*포르티투토; 영혼의 힘,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뭔가가 되게하는 능력. * 아니모시타스; 아니마(anima)-> 혼(soul)에서 파생된 용어로 인격전체의 행위에서 나타나는 용기-> “용기란 모든 사람들이 이성의 명령대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분투하려는 열망” 즉, 스피노자의 자기긍정은 신적인 자기 긍정속에 참여하는 것-> “모든 특정한 존재, 더 나아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데 사용하는 능력은 곧 신의 능력이다.", " 완전한 자기 긍정은 한 개인에게서 시작된 고립된  행동이 아니라  모든 개별적인 행위 속에서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보편적인 혹은 신적인 자기 긍정의 행위 속으로 들어가는 참여이다.“-> 신적 능력에 영혼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그는 지식과 사랑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신에 대한 지식과 신안에 있는 자기 존재에 대한 지식은 완벽한 행복의 근거이며 결과적으로 그렇나 행복의 근거를 향한 완벽한 사랑의 근거이다. 격정의 감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감성은 바로 마음의 감성이며, 이러한 감성이란 영원의 바탕에 뿌리내린 영혼의 영적및 지적 사랑이다. 존재의 용기가 가능한 이유는 그것이 존재 자체의 자기 긍정 속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 용기와 생(Nietzsche)

논리적으로  자기 보존과 자기 긍정은 잠재적으로라도 자아를 위협하거나 부정하려는 뭔가를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사고체계의 틀 속에서 이런 부정적인 요소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봄. -> 니체는 ‘생 철학(philosophy of life)' 이라는 사고체계를 드러낸 가장 인상적이고 실제적인 대변자. 여기서 생이란 존재의 힘이 자신을 실현시키는 과정으로 생 안에서 생에 속해 있으면서도 생을 부정하는 그 요소를 극복한다. 그는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자기 긍정을 덕성으로 삼았다. 니체의’ 생‘은 스피노자의 ’본질‘을 대치한다.  “자신을 능가하려는 생은 선한 생이며 선한 생은 용감한 생이다. 그것은 강력한 영혼과 의기양양한 육체의 생으로 항상 나 자신을 능가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 바로 거기에서 생은 권력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고말하며 자기 긍정에 자기 부정을 초함시킨다. 그것은 생은 뭔가를 창조하고 자신이 창조한 것을 사라하지만 곧 그것에 적대적인 입장에 선다는 것을 인정한다. 생의 의지도 그와 같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곧 권력에의 의지가 있다는 점.->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는 의지는 창조족인 의지이다 그것은 온갖 파편들과 수수께기들로부터 전체를 만들어 낸다. 그 의지는 뒤를 돌아보지않으며 양심의 가책을 초월한다. 그것은 자책감과 죄의식의 근성을 나타내는 ’복수의 정신‘을 거부하며 화해의 수준을 초월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권력에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용감한 자아는 생 자체와 그 생의 비밀과 결합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라케스>에서부터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에 이르는 서양 사상의 역사속에서 용기의 존재론적 문제는 철학가들의 많은 관심을 이끌어냄. 그 이유는 용기의 도덕적 특성이 존재론적 특성 없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며 용기의 개념이 실체에 이르는 존재론적 접근을 위한 뚜렷한 해결책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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