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현 션생님 발표입니다:『젠더트러블』2.1-2 (2015. 4. 11)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시 : 2015-04-1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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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수 현

(성균관대학교 석사과정)

 

 

『젠더트러블』

 

2. 금지, 정신분석학, 그리고 이성애적 모태의 생산

 

 

· 기존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의 자기 물화(self-reification)을 폭로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은 페미니즘 내부의 또 다른 물화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 가부장제의 법을 억압적이고 규제적인 구조로 표명하려면 여성적 경험의 물화를 발전시

   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페미니즘에는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가부장제적 법이 나타나기 ‘이전의’ 모습, 또 법이 필연

  적인 양식으로 등장하게 된 과정에 관한 기원을 기술하려는 경향이 있어왔다.

 

  -  페미니스트들은 과거의 흔적들에서 법의 파괴와 전복, 모반의 잠재적 원천을 발견했다.       (이러한 분석은 페미니스트들이 본래의, 혹은 순수한 ‘여성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 버틀러는 여성이 보여주는 성적 특성을 옹호하는 기존 페미니즘의 경향은 이성애 중심주의에 경도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녀는 동성애를 옹호하기 위해 여성성 전제를 거부하는 것인가?

 

·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은 섹스/젠더의 구분을 지지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에게

  전유되었다. (생물학적, 자연적인 것: 섹스 / 문화적인 것: 젠더)

 

- 이들의 시각에서 섹스는 문화적, 정치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 이전에’ 존

   재한다. 이는 섹스가 가부장제, 친족 법칙 안에 명목을 유지시키는 ‘원재료’로 작용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버틀러에게 문화적 의미화 도구로서의 섹스 개념은 젠

   더와 마찬가지로 담론적인 구성물로 여겨진다. 

 

· 섹스/젠더의 구분은 자연/문화 구분의 토대이자 지배 전략으로 작동한다.

  (문화/자연 사이의 이분법적 관계는 위계관계를 발전시킨다)

 

 - 자연은 문화에 종속되는 여성적인 것에 비유된다.

    (버틀러는 이러한 구분을 만드는 성 정치학이 자연에 대한 담론적 생산, 즉 자연스러운

    성 덕분에 효과적으로 은폐된다고 생각)

 

● 그렇다면 여성성의 탈본질화가 곧바로 섹스의 탈자연화로 이어지는가? 여성성의 탈본질화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

2.1 구조주의의 비판적 교환

 

· 구조주의는 법을 단일한 것으로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친족의 모든 체계를 특징짓는 교환을 규제하는 ‘보편적 구조’가 있다고 간주)

 

· 레비-스트로스의 『친족의 기본 구조』(The Elementary Structures of Kinships)

 

- 여성은 ‘교환 대상, 신부, 선물’이다(여성은 결혼 제도 안에서 부계혈통의 교환 대상이

  되면서 친족관계를 강화하고 변별화하는 역할을 한다).

- 이러한 행위는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고 내적 유대를 갖는 상징적, 제의적 목적을 수행한다.

- 여성은 결혼을 하면 남성들 간의 ‘관계어’(relational term)으로 작용한다. 여기서 여성은

  정체성의 부재의 장소가 되고, 그저 남성적 정체성을 반영할 뿐이다.

- 남성 구성원들은 결혼이라는 ‘반복된 상징적 변별화 행위’를 통해 정체성의 특권을 환기시킨다(여성은 남성적 정체성의 특권의 재생산을 안정화시키고 남성 씨족들 간의 상징적인 교류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 소쉬르는 기표/기의의 관계를 자의적인 것으로 보기는 하지만, 이 자의적 관계를 반드시 ‘완

  결된 언어체계’ 안에 두고 있다.

 

 - 언어를 체계적 총체성에 비유하는 유사 라이프니츠 관점은 총체화 된 장 안에 있는 자의

    성의 요소를 언급하면서도 실제로는 기표와 기의의 차이의 요소를 억압한다.

    (기표/기의의 이분법에 대립: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 언어의 차연(differance))

 

· 사회적 교환이라는 변별화의 계기는 ‘남성 간의 사회적 유대’로 나타난다.

 

 - 이리가레는 남근로고스 중심경제가 결코 표명되지는 않지만 언제나 전제되는 동시에 부

    정되는 차연의 경제에 근본적으로 의존한다고 주장

    (부계 계승 씨족 간의 관계는 동성사회적(homosocial) 욕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리가

    레는 이를 ‘남성 간-섹슈얼리티(hommo-sexuality)’라고 부름)

 

 · 남성 간의 관계는 여성들을 이성애적으로 교환, 분배함으로써 발생하는 관계이고, 족외혼      법칙은 그 자체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이는 남성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수단을 제공한다. 레비-스트로스는 근친상간금지와 동      성애적 유대 강화 사이의 연관성을 주장하고, 버틀러는 이를 주목한다)

  

  * 레비-스트로스는 족외혼적 이성애가 “더 자연스럽고 덜 억제된 성욕”(근친상간)을 금지함

    으로써 만들어진 “비근친상간 이성애의 인위적 성과물”이라고 여긴다.

    

    -> 그러나 버틀러는 남성들 사이에 설정된 상호성(유대)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남녀간의

       비상호관계의 조건이자, 이른바 여성 간의 비관계의 관계의 조건이 된다고 설명.

       (버틀러는 이를 통해 레즈비언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 이리가레는 『성과 친족』에서 남성들 간의 상호 교환구조가 여성, 여성성, 또는 레즈비        언 섹슈얼리티라는 명명 불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경제 안에서 발화될 수 없는 양성 간의      비상호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비판적 해석을 하고 있다. 

   

    -> 버틀러는 상징계에서 배제된 성의 영역이 존재하고(여성, 여성성, 또는 레즈비언), 배

       제된 성의 영역이 이 범위 안의 모든 것을 전체화하기보다는 ‘상징계의 패권주의’를

       폭로할 수 있다면, 배제된 성의 영역을 상징 경제 내부나 바깥에 위치시키는 일이 분

       명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계보학적 비판을 통해 이러한 법의 우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생성력을 폭로하고자 한다.

 

   · 버틀러의 구조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

  

   * 어떻게 금기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 금기가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가?

   * 레비-스트로스가 근친상간을 문화적 환영으로 간주하는데, 이러한 사회적 환영은 어떻게

     생산되고, 이러한 사회적 확신은 하나의 사회공간(레즈비언을 일컫는 듯 하다)을 거부하

     고 또 일소해 버리는가?

   * 근친상간적 ‘이성애’는 어떻게 욕망의 외견상 자연스럽고, 인공화 되기 이전의 ‘모태’로

     구성되는가?

   * 욕망은 어떻게 이성애 남성의 특권으로 설정되는가?

 

● 레비-스트로스는 친족관계를 설명하면서 구조적 체계성이 인간관계의 구조를 정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보편적 구조’가 있다고 설명한다. 버틀러에게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담론은 근친상간이 사회적 사실이 아니라 확산된 문화적 환영으로 간주한다는 점, 즉 욕망의 주체가 ‘이성애적 남성성’을 띤다고 가정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또 그녀는 소쉬르의 언어 이론 등이 섹스와 젠더의 이분법적 구조를 보편적 구조로 전제했으며, 여기에서 여성성이 배치될 자리는 부재한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버틀러는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언급하고자 한다.

 

 

2.2 라캉, 리비어 그리고 가면의 전략

 

 

· 라캉의 젠더 및 섹스의 ‘존재’

 

- 존재론에 주어진 우선성을 반박한다.

  ->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부권적 경제의 의미화 실천을 통해 어떻게 ‘존재’가

     제도화되고 배치되는가?”에 종속되어 있다.

  -> 의미화 구조는 상징계처럼 그 자체가 존재론 ‘이전’에 있는 것이다.

     결국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의 의미화에 대한 선험적 탐구를 해야 한다.

 

· 팔루스 ‘임(being)’ / 팔루스 ‘가짐(having)’

 

 - 팔루스 ‘임’: 타자의 욕망에 ‘기표’가 된다. (여성은) 팔루스가 됨으로써 욕망의 대상

   이 된다는 것이다. 팔루스는 욕망의 기표이므로, (여성이) 팔루스가 됨으로써 (이성애화된)     남성적 욕망의 타자가 된다.

  * 여기서 타자는 남성적인 자기 이론화의 장소를 구성하는 타자이다.

  * 여성에게 팔루스가 되는 것은 팔루스의 권력이 반영된다는 것, 권력을 표시하는 것, 팔루

    스를 체현하는 것, 팔루스가 스며들 ‘장소’를 제공하는 것.

  * 부재, 결핍, 남근의 의미화

  * 라캉은 “팔루스를 결여하고 있는 타자가 팔루스이다”라고 주장(이는 여성적 위치가 팔루      스를 소유하지 못했으므로 자신이 직접 팔루스가 ‘됨으로써’ 권력을 휘두른다는 설명)

 

- 팔루스 가짐: 팔루스를 가진 남성적 주체. 남성의 위치는 팔루스 가짐으로 설명된다.

*  위와 같은 존재론적 성격은 의미화의 구조(이러한 구분은 아버지의 법(언어, 상징계)를 통

   해 생산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팔루스 ‘임’/팔루스 ‘가짐’이라는 상호 배타적인 위치를 통해 문화적 인식 가능성을

   만든다)

 

· 라캉의 주체

 

 - 라캉에게 주체는 존재가 되는 것, 즉 언어(상징계)에 종속되면서 형성된다.

 

 ** 버틀러는 라캉의 주체가 “(억압된) 모성의 몸과 결합된 개체화 이전”(상징계 이전)의 ‘근       친상간적 쾌락’이라는 일차 억압 조건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 여성은 팔루스 ‘이기’ 위해서 남성이 아닌 것 ‘이어야’하며, 여성의 결핍 속에서 남성의 본

  질적 기능을 확립해주어야 한다.

 

 - 버틀러는 팔루스 ‘임’은 언제나 어떤 남성 주체를 위한 존재를 의미하며,

    ‘~를 위한 존재(being for)’, 즉 팔루스가 되는 여성적 주체를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정체

    성을 재확인하고 증폭시키려 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 팔루스가 되는 것(to be the phallus)

 

 - 아버지 법(상징계, 언어)에 의해 의미가 된다.

 - 법의 대상인 동시에 도구가 된다.

 * 버틀러는 여기에서 여성이 법을 완전히 ‘반영’할 수 없는 한, 이 팔루스 ‘임’은 필연적으로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본다.

 * 또, 그녀는 남성은 팔루스를 ‘가진다’라고는 해도 팔루스 ‘임’, ‘이다’라고 하지 않는다고      보는데, 즉 페니스는 법의 등가물이 될 수 없고(페니스를 가졌지만 팔루스 ‘임’은 아닌) 그     법을 완전하게 상징화할 수도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  라캉은 여성성을 우리의 상징적 질서, 즉 상징계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의식적 작용 너머의 무의식적 진리차원인 실재계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라캉은 여성성을 실재계 차원의 것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 상징계 차원 너머의 것으로 설명하면서 여성성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버틀러는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설명하기 위해 라캉의 관점을 편협한 시각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 그렇다면 여성은 어떻게 해서 팔루스처럼, 팔루스를 체현하고 확증해줄 결핍처럼 ‘보이는

 가’?

 

 - 라캉에 따르면

 ① 이는 가면, 즉 여성적 위치 그 자체의 본질적 요소인 우울증 효과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② 여성의 위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결핍을 위장하기 위해서이다.

 ③ 팔루스인 것 ‘처럼 보이는’ 것은 필연적으로 가면이다.

 

**버틀러는 팔루스에 대한 존재론적 특징이 ‘가면’이라면, 모든 젠더의 존재론은 외양의 작용    으로 환원된다고 설명한다. 다른 한편, ‘가면’은 이에 선행하는 어떤 존재나 존재론적 특징

  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또, 가면으로 가려지고 폭로될 수 있는 여성의 욕망이나 요구,    즉 여성적 욕망이나 요구가 있다는 것이다.

 

● 버틀러는 여성성을 상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여성임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이 되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 조앤 리비어의 「가면으로서의 여성성」(Womanliness as a Masquerade)

 

- 리비어는 여성성의 가면을 공격성과 비난에 대한 두려움을 유혹과 교태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

- 가면을 통해 여성성의 모든 속성을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팔루스가 되기 위해서이다.

- ‘남성성’을 소망하지만 남성성이라는 외관을 취했을 경우 받게 될 보복의 결과를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여성성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

 

**버틀러의 질문: 그렇다면 거부된 것이 분명한 ‘여성성의 본질적 부분’은 무엇인가?

                 팔루스를 확증해주고, 그 결과 팔루스가 된 결핍을 명백히 하기 위해 박탈

                 되어야 할, 어떤 추정된 남성성인가?

 

· 버틀러는 가면이 우울증적 합체(incorporation) 전략의 일부이고, 상실한 대상/대타자의 속성을 몸에 걸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가면에 대한 논의를 여성 동성애와 연관시켜 설명한다.

 

- 애도: 상실 대상이 무엇인지 확실하고 현실 인식을 통해 대상의 상실을 받아들이며, 이 대          상에 집중되었던 리비도가 다른 대상으로 전이된다.

 

- 멜랑콜리: 멜랑콜리에서 상실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며 심각한 자기비난과 자아의 빈곤이                발생한다. 멜랑콜리적 동일화는 대상에 부착되었던 리비도가 다른 대상으로 전               이되는 애도와 달리 주체 내부로 선회하는 것을 말한다. 상실한 대상은 점차 자               아의 성격을 형성하고 자아의 심리적 지형이 바뀌어 자아이상이 구성되고 이                과정에서 젠더 정체성이 형성된다.

 

·  라캉은 “여성의 동성애의 경향은 실망(한 이성애)에서 오는 것, 그 실망은 사랑의 추구라는

   측면을 강화시킨다”라고 설명.

 

   - 버틀러는 이러한 결론이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섹슈얼리티 자체의 거부로 받아들이는       이성애적이고 남성적인 관찰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보았다. 또, 그녀는 여기서 섹슈얼       리티는 단지 이성애적인 것으로만 간주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  여성성은 남성적 동일시를 지배/해결하는 가면이 된다.

   (남성과의 동일시는 이성애적 욕망의 모태라고 가정되는 것 안에서 여성적인 대상, 즉 팔     루스를 향한 욕망을 만들기 때문이다. 여성성의 가면을 쓴다는 것은 여성적 동일시의 거절     을 의미할 수도 있고, 동시에 거절된 여성 타자의 과장된 합체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      다.)

 

*** 버틀러는 멜랑콜리가 젠더를 형성하고 이성애적 젠더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관심을 두

     고, 또 젠더 정체성을 강제적 이성애의 효과로 제한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그녀는 이성

     애적 동일시가 설정되는 이성애적 근친상간 금기의 경우, 상실은 애도로 나타나지만, 동

     성애적 대상의 상실은 목적과 대상의 상실 둘 다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즉 대상만 상실

     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도 완전히 부인’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버틀러는 여자아이가 최초의 사랑대상이자 동성애적 애착대상을 어머니로 설정하고, 아버지를 새로운 사랑의 대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다른 남성을 선택하면서 정상적인 이성애적 여성으로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근친상간 금기 이전에 동성애 금기가 있는 것인가?

 

● 버틀러는 결혼의 규칙이 오직 이성애의 족외혼에 해당되고, 근친상간금지는 남성 중심의 이성애 사회의 담론을 옹호하는데 이용되었으며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적 구조와 보편성을 전제한다고 보았다. 그녀가 보기에 상징계는 언제나 초월적이고, 정신분석의 출발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근친상간금지와 이성애중심주의를 지탱하는 중핵인 것이다. 그녀는 상징계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패권주의를 전복함으로써 배제된 여성성과 동성애적 가족구조를 전경화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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